꼬꼬무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재방송 |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1999 인현동 라이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2회 4월 7일 게스트 최예나 예성 유인영 SBS 온에어 실시간

꼬꼬무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재방송 |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1999 인현동 라이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2회 4월 7일 게스트 최예나 예성 유인영 SBS 온에어 실시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는 눈길을 사로잡는 그 날, 그 사건으로부터 세 명의 이야기꾼이
스스로 공부하고 한 사람의 소시민으로서 ‘내’가 느낀 바를 각자의 이야기 친구에게 일상적인 공간에서 온전히 주관적으로 전달하는 SBS의 시사 교양 프로그램입니다.

꼬꼬무 23회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 1999 인현동 라이브>편은 오는 4월 7일 목요일 밤 10시 30분에 방송됩니다.

꼬꼬무 재방송 홈페이지

꼬꼬무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지난 회차인 꼬꼬무 이수근 사건편도 함께 참고하여 봐주시길 바랍니다.

꼬꼬무 23회에서는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에 대해서 이야기 해봅니다.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는 1999년 10월 30일 오후 6시 55분에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83번길 10(인현동 27-43)에 있는 ‘라이브2 호프집’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 사고입니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가 일어난 후 4개월 밖에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난 사고로 사망 56명, 부상 78명의 대참사로 정부 수립 이래 3번째 규모의 대형 화재 사고였습니다.

꼬꼬무 재방송 홈페이지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 및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꼬꼬무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23회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 1999 인현동 라이브

당시 인천 최대의 유흥가였던 동인천역 인근의 구도심 상권은 이 사고가 터져버림으로 인해 상권 위축 수준을 넘어 도심 지위가 구월동과 관교동으로 넘어가는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이 타격은 주안역과 동암역의 상권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에는 세 지역 상권이 같이 망하다시피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다른 도시의 원 도심과 다르게 인천 원 도심에 해당하는 중구와 동구가 현재까지도 무척 피폐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 사고로 아들을 잃은 전 여자 하키 국가대표 김순덕은 안그래도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 사건까지 터지자 “이 나라는 달라질 게 없다. 어린아이 하나 지키지 못하는 이딴 나라에서 내 자식을 키우지 않겠다.”며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버렸습니다.

15년 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지자 ‘여전하다. 우리 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씁쓸한 비난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회차인 꼬꼬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편도 함께 참고하여 봐주시길 바랍니다.

꼬꼬무 23회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 및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꼬꼬무 SBS 온에어 실시간

문제의 인현동 ‘라이브2호프’는 4층짜리 상가 건물로 지하에는 노래방, 1층에는 고깃집, 2층에는 호프, 3층에는 당구장이 있었습니다.

당시 지하 노래방은 내부 수리 공사 중이었는데, 이곳에서부터 불이 나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화재의 원인은 노래방에서 일하던 10대 아르바이트생 2명의 불장난이었다고 합니다.

노래방에서 시작된 불은 진압되었으나, 화염과 유독 가스가 지상 입구에서 지하 노래방을 잇는 벽의 소재를 타고 3층까지 올라간 것이 문제였습니다.

화염과 가스가 출입구를 가득 채웠으니 위층에서는 출입구를 통해 내려올 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1층은 화재를 금방 알아채 대피했고, 3층 NBA당구장에 있던 사람들도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면서 부상자는 있었지만 사망자는 없었으며 결국 모든 사망자는 2층 호프집에 집중되었습니다.

지난 회차인 꼬꼬무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편도 함께 참고하여 봐주시길 바랍니다.

▼ 꼬꼬무 SBS 온에어 실시간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 및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4월 7일 방송

당시 호프집은 마침 학교 축제가 끝난 뒤 뒤풀이를 하던 인천 지역 고등학생들이 꽉꽉 들어차 있었고 사망자 대부분도 이들이었습니다.

이 때는 인천 지역 고등학교 축제가 몰려있던 시즌이었는데, 축제가 끝난 직후라 모두 학생임을 드러내는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사고 후에도 계속 질타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사용 가능한’ 비상구가 있었다면 이 정도로 심각한 규모의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불 자체는 30분 만에 진압되었고, 모두 비상구로 탈출하는 일만 남은 상태였는데 있던 비상구를 베니어 합판으로 막아버렸습니다.

또 호프집이 2층이었던 만큼 창문에서 뛰어내린다면 어딘가가 부러질지언정 죽지는 않았겠지만, 내부 수리를 하면서 창문을 개폐식이 아닌 통유리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심지어 간판으로 쓰려고 모두 판자를 붙여 놓은 상태였다 보니 그 방법을 택하는 것 역시 어려웠습니다.

지난 회차인 꼬꼬무 1954 FIFA 스위스 월드컵편도 함께 참고하여 봐주시길 바랍니다.

▼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4월 7일 방송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 및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꼬꼬무 23회 게스트 최예나 예성 유인영

거기다가 호프집 주인의 이해 할 수 없는 조치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화재로 고등학생들이 빠져나가려고 하자 대왕코너 화재사고 때처럼 “돈 내고 나가라.”라며 유일한 출입구를 막은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 출입구까지 봉쇄된 채 유독가스에 노출된 학생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질식사하였습니다.

거기에 더해 이 업소는 사실 1999년 3월에 안전 기준 미달로 적발되어 중구청으로부터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은 상태였으나, 화재 당시 업소 주인이 인수하여 무허가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즉 뇌물로 공무원들을 매수했기에 가능한 불법 영업이었고, 사고 후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 역시 구속되었습니다.

이 날 4월 7일에 방송되는 23회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 1999 인현동 라이브>편에서는 최예나, 예성, 유인영이 게스트로 출연하였습니다.

지난 회차인 꼬꼬무 김제 마늘밭 돈뭉치 사건편도 함께 참고하여 봐주시길 바랍니다.

▼ 꼬꼬무 23회 게스트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 및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꼬꼬무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 재방송 |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1999 인현동 라이브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22회 4월 7일 게스트 최예나 예성 유인영 SBS 온에어 실시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목차